네팔 티제 축제: 여성의 기도와 금식이 만들어내는 신성한 연대
카트만두 외곽의 작은 마을을 여행하던 중, 나는 우연히 티제 축제를 맞이한 현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티제는 네팔 힌두 여성들이 결혼 생활의 장수를 기원하며 참여하는 전통 축제로, 매년 여름이면 붉은색 사리와 장신구를 두른 여성들이 마을 중심에 모여 기도하고 춤을 추는 장면이 펼쳐진다.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종교 행사 같지만, 그 안에는 여성들의 결속력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이 축제는 사흘 동안 진행된다. 첫째 날에는 '다르칸'이라 불리는 잔칫상이 준비된다. 여성들은 음식을 함께 나누며 우정을 다지고, 둘째 날에는 금식에 들어간다.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는 이 금식은 남편의 건강과 가정의 안정을 기원하는 헌신의 표현이다. 셋째 날은 사원에 모여 기도와 전통 노래, 그리고 춤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둘째 날 새벽부터 여성들과 함께 사원으로 향했고, 그들 가운데 앉아 금식하며 이어지는 의식을 지켜보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나이 든 여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서로의 건강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단지 개인적인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공동체 전체의 복을 함께 빌고 있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대'의 실천적 장면처럼 느껴졌고, 한 명의 방문자로서도 그 신성한 에너지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티제는 단지 종교적 신념을 넘어서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고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상징한다. 이 축제를 직접 경험한 후, 나는 그것이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여성 삶의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광객의 눈에는 화려한 의상과 춤만이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문화적 저력과 감동이 있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파체스 의례’: 대지의 정령과 소통하는 신성한 시간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의 산악 지대에는 지금도 고대 마야 문화의 흔적이 살아 있다. 나는 이 지역을 탐방하던 중, 현지 원주민 사회에서 진행되는 ‘파체스’라는 의례에 초대받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파체스는 해마다 농경을 시작하기 전, 대지의 정령에게 감사와 허락을 구하는 전통의식으로, 외부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행사는 깊은 산 속 작은 공동체에서 진행되며, 주민 외의 참여는 극히 제한적이다.
나는 마을 원로의 허락을 받아 의식 준비 과정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파체스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복합 문화 행위였다. 먼저 마을 사람들은 각자 농기구를 정비하고, 씨앗을 담은 그릇을 준비한다. 그 다음 원로들이 주관하는 의식이 시작되는데, 중앙에 땅을 상징하는 흙과 옥수수, 물, 불, 공기 네 요소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놓인다. 이 자리에서 기도문이 낭독되고, 대지에 술과 꿀을 붓는 제의가 이어진다.
그 순간 나는 매우 독특한 감각을 느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 분위기 속에서 대지와 사람, 신령 사이의 연결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고요히 땅을 바라보고, 숲에서 나는 바람과 향의 울림 속에서 하나가 되는 그 장면은 도시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생명의 의식이었다.
의례가 끝난 뒤에는 잔치가 벌어진다. 옥수수로 만든 전통 음식과 발효주를 함께 나누며,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파체스는 단지 땅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신뢰와 공동체 유대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에서 '농사'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영성과 직결된 신성한 행위임을 절감했다.
이러한 의례는 관광상품이 될 수 없는 가치다. 그것은 오로지 함께하고, 느끼고, 존중하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삶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파체스를 통해 나는 '사는 것'이란 단어가 가진 본래의 깊이를 다시 만났다.
인도네시아 토라자족의 ‘라마자 축제’: 죽음을 기리는 살아 있는 축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고원 지역, 토라자족은 죽음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여긴다. 나는 이들의 독특한 장례 의식인 ‘라마자’ 축제를 보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사전 조사와 허가를 거쳐 방문하게 되었다. 라마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열리는 장례 의식으로, 보통 한 달 이상에 걸쳐 준비되고 최대 일주일 동안 진행된다. 일반적인 장례식과 달리 이곳에서는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축제로 기념하는 것이 특징이다.
축제 당일, 마을 광장에는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시작되었고, 가족들은 돌아가신 이를 위해 춤과 노래, 그리고 대규모 연극 같은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마치 혼례식처럼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고인을 기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이 축제의 중심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점점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라자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이며, 그 이별을 제대로 기리는 것이 남은 자의 책임이자 사랑의 증표였다. 가족들은 수년간 돈을 모아 이 장례식을 준비하며,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축제에 참여한다. 이는 단지 가족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기념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은 매우 깊고 성찰적이다.
또한 라마자 축제는 토라자 문화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인의 생애를 이야기로 재현하는 극, 조각상으로 표현되는 삶의 기록, 각 부족별 춤과 음악은 단지 전통예술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축적한 문화적 표현이었다. 나는 이 축제를 보며, 슬픔을 예술로 전환해내는 인간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라마자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경과 감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다. 이 축제를 직접 경험한 뒤, 나는 죽음에 대한 관점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축제의 한복판에서 만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오히려 따뜻했고, 인간다웠다. 삶의 끝을 이렇게 화려하게 보내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