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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언어 배우기 도전기

by noon 2025. 6. 30.

왜 사라져가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까

현대 사회에서 영어와 중국어, 스페인어 같은 주요 언어들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매년 수십 개의 언어가 영원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500개의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저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깊은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세계관과 철학, 그리고 수천 년간 축적된 지혜가 담긴 보물상자와 같습니다. 라틴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죽은 언어가 아니라 서구 문명의 뿌리이자 현재까지도 의학, 법학, 과학 분야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언어임을 깨달았습니다.

에스페란토어에 대한 관심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말 폴란드 의사 자멘호프가 만든 이 인공어는 전 세계 사람들이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통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이상주의적 꿈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록 세계 공용어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 약 100만 명의 사용자가 있으며 독특한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누어나 하와이 원주민어 같은 소수 민족 언어들을 접하면서, 이들 언어 속에 담긴 자연과의 교감, 공동체적 가치관, 그리고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지혜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언어들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어휘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라져가는 언어 배우기 도전기

학습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과 어려움

사라져가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일반적인 외국어 학습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학습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이었습니다. 영어나 중국어처럼 풍부한 교재와 온라인 강의, 언어 교환 파트너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언어들과 달리, 소수 언어들은 기본적인 문법서조차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라틴어의 경우 고전 문헌들이 방대하게 남아있어 학습 자료는 풍부했지만, 현대적 맥락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들을 익히기가 어려웠습니다. 키케로의 연설문이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를 읽을 수는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나 현대적 개념을 라틴어로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또한 발음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부족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라틴어를 발음했는지는 추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페란토어 학습에서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문법이 비교적 단순하고 규칙적이어서 기초 학습은 쉬웠지만, 실제 원어민 수준의 유창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스페란토 공동체에 깊이 참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에스페란토 학습자나 사용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고, 대부분의 활동이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가장 큰 도전은 아이누어를 배울 때 겪었습니다. 이 언어는 현재 모어 화자가 거의 없는 상태로, 대부분의 자료가 언어학적 연구나 문화 보존 목적으로 기록된 것들이었습니다. 발음 기호나 문법 설명도 전문적인 언어학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어려움 외에도 심리적인 좌절감도 컸습니다. 일반적인 언어 학습에서는 진전이 있을 때마다 실용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만, 사라져가는 언어들은 당장 사용할 곳이 제한적이어서 학습 동기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주변에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만의 외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화적 발견과 깨달음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어 얻은 문화적 발견들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각 언어 속에 담긴 고유한 세계관과 철학을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라틴어를 통해서는 서구 문명의 뿌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고전 문학작품을 읽는 것을 넘어서, 로마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라틴어의 격변화 체계는 주어와 동사, 목적어의 관계를 한국어나 영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통해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틴어로 사고할 때는 논리적 구조와 인과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었고,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스페란토어에서는 언어를 통한 평등과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국적이나 민족, 종교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인간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에스페란토 공동체에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세계 평화와 상호 이해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모임이나 국제 대회에 참여하면서, 언어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공동체 형성의 핵심 요소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누어 학습을 통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누어에는 자연 현상이나 동식물을 묘사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한 표현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는 아이누 민족이 자연과 얼마나 밀접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곰을 지칭하는 단어만 해도 계절과 상황, 행동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있었고, 이는 단순히 동물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곰을 이해하는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언어들을 배우면서 가장 큰 깨달음은 언어의 다양성이 인류의 사고 다양성과 직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언어마다 독특한 표현 방식과 개념 체계를 가지고 있고, 이는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의사소통 도구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 자체를 잃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또한 이러한 언어들을 배우는 과정에서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주류 언어 중심의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당연시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수 언어들 속에 담긴 지혜와 통찰력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사라져가는 언어를 배우는 것은 결국 사라져가는 인류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었고, 이를 통해 더욱 풍요로운 세계관을 갖게 되었습니다.